극단 달팽이주파수의 연극 <고시원>을 보다

2022. 7. 5. 15:27연극

728x90
반응형

포스터를 클릭하면 예매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극단 달팽이주파수 <고시원> 연극 후기

 

 

1. 믿고 보는 극단 달팽이주파수

 

나는 어렸을 때부터 연극을 조금씩 보아왔다. 부모님을 따라서, 혹은 학교 행사로 대학로에 가서 연극을 몇 차례 관람했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벤트가 있을 때는 연극을 재미있게 보았으면서도, 스스로 찾아가 연극을 보지는 않았다. 어린 나에게 대사와 연기로 이루어지는 연극보다는 레이저와 광선검이 화면을 채우는 영화가 더 좋았던 것 같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에 나는 연극을 한동안 잊게 되었다. 수능이 다가오고, 대학에 붙고, 술자리가 있는데 연극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런 나를 다시 연극의 세계로 불러들인 것은 현재 스폿라잇의 대표이자, 당시 연극부 신참이었던 내 친구였다. ‘내가 나오는 연극이 있는데 보러 올래?’라는 그의 문자를 받고 나는 망설임 없이 응했다. 중학생 때 <라이어>라는 연극을 재미있게 봤던 기억이 있었는 데다가, 친구의 연기가 어떨지 너무 궁금했다.

 

친구가 조연으로 출연한 연극은 <가든파티>라는 부조리극이었다. <라이어>와는 완전히 다른, 난해한 연극이었다! 하지만 나는 연극에 흥미를 잃는 대신, 연극이 영화와 참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구가 스폿라잇을 런칭하면서 나는 소극단 연극들을 하나씩 찾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고민 끝에 처음으로 시도한 연극은 달팽이 주파수의 <산난기>였다.

 

연극이 끝난 뒤에도 나는 자리에서 쉽사리 일어날 수 없었다. 풍자, 코미디, 드라마, 비판이 모두 담긴 이야기와 배우들의 열연에 완전히 압도당한 기분이었다. 지금 당장 <산난기>의 줄거리와 느낀 점을 쓰라면, 몇 시간 동안은 글을 써 내려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 산난기가 재연할지도 모르고(꼭 그랬으면 좋겠다!) 만약 그렇다면 이 글이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에 자제하도록 하겠다.

 

나는 <산난기>를 관람한 이후로 연극에 중독되었다. 스폿라잇의 단골 고객이 되어 시간이 될 때마다 소극단 공연 일정으로 확인하고 표를 예매하고 혜화역까지 지하철을 탔다. 물론 달팽이주파수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그들의 활동을 지켜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두 번째로 본 달팽이주파수 공연은 <인싸이드>였다. 얕궃게도 입대 전날에 공연을 보았기 때문에, 이것이 한동안 내가 본 마지막 연극이었다. 그리고 그 덕분에, 군생활 중에도 연극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인싸이드>는 한 학생의 자살 사건을 탐구하는 스릴러로, <산난기>와는 사뭇 다른 장르였지만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이야기였다.

 

2020년에 관람한 달팽이주파수의 공연들. <산난기>(좌), <인싸이드>(우).

 

나는 초등학생 때 스타워즈의 팬이었다. 중학생 때는 해리 포터의 팬이 되었고, 고등학생 때는 아시모프의 팬이 되었다. 그리고 <산난기>와 <인싸이드>를 본 뒤에는 달팽이주파수의 팬이 되었다. 대단한 각본과 훌륭한 배우들 덕분에, 달팽이주파수가 무슨 공연을 하든 달려가 몰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고시원>이 공개되었을 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표를 예매했다.

 

2. 가자, <고시원>으로!

 

장마가 절정을 달리던 6월 30일, 나는 필사적으로 비를 막으면서 대학로를 걸었다. 우산을 피해 들어오는 빗방울 때문에 옷이 조금씩 젖어들었지만, 옷에 대한 걱정보다는 연극에 대한 설렘이 더 컸다. 연우소극장 앞으로 도달하니 <고시원> 배너가 관객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고시원>이 공연된 연우소극장.

연우소극장은 관람석이 무대를 ㄴ자 모양으로 감싸는 형태였다. 실제 고시원 라운지처럼 냉장고, 전기밥솥, 만화책, 소파 등의 소품이 무대에 정성스럽게 배치되어 있었고, 벽에는 고시원 규칙과 생활 지침이 붙어 있었다. 그런데 잠깐, 지침이 뭔가 이상하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피곤하다,’ ‘고생하면 골병든다,’ ‘성공은 1% 노력 99% 빽이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이 실제로 고시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암시하는 걸까.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무대와 소품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다. 나는 조명이 꺼지기 기다리는 동안 무대를 보면서 허름한 고시원을 상상해 보았다. 이런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어떤 ‘공부’를 하고 있을까? 이들의 일상은 어떻고, 시놉시스에 써져 있는 ‘조지아나’는 어떤 사건을 일으킬까?

 

실제 고시원처럼 꾸며진 무대.

화장실에 가는 길에 공찬호 배우님을 마주쳤다. 20개월 전, <인싸이드>에서 그를 보았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그때의 열연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그를 보자마자 알아볼 수 있었다. 우리가 마주친 1초 동안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감탄의 문장들이 떠올랐지만, 결국 나는 고개만 끄덕이고 지나갔다. 이런 바보 같은!

 

3. 박수, 또 박수

 

안치환의 <희망가>가 무대에 울려 퍼지며 막이 오른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희 희망이 무엇이냐고 묻는 가사. 제목은 희망적이지만 노래는 쓸쓸하다. 쓸쓸한 사연을 하나씩 가진 고시원 사람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쓸쓸한 삶 속에서도 사람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법. 이 고시원에는 어떤 사연과 어떤 희망이 있을까?

 

<고시원>의 이야기는 주로 터줏대감 ‘도연’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다른 고시원 사람들에게 사사건건 참견하고 때로는 시비를 걸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주는 고시원의 말년병장이다. 그의 대화를 통해 우리는 고시원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이해하게 된다. 고시원 총무 ‘주환’, 래퍼 지망생 ‘종섭’, 오뎅 노점상 ‘명옥’, 고시원의 신병 ‘조지아나’, 그리고 그들과의 교류를 피하는 ‘끝방’. 이들의 이야기가 무대에서 생생하게 펼쳐진다.

 

나에게 <고시원>은 달팽이주파수 연극 중에서도 최고였다. <산난기>와 <인싸이드>보다는 부드럽고 훈훈한 분위기지만, 이야기에 담긴 함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오히려 ‘희망’을 직접적으로 다루는 만큼 가장 묵직하게 이야기가 다가온다. 후반부에 도연과 조지아나가 나누는 대화에서 함께 진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희망에 대한 예찬을 느낄 수 있었다.

 

6월 30일 <고시원> 캐스트.

<고시원>을 이야기하는 데 배우들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의 멱살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우연히 이전에 보았던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 날이었는데, 이전에 어떤 캐릭터를 맡았는지 생각하면서 관람하니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들에게 감탄하고 또 감탄하게 되었다. 하나의 얼굴로 전혀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어떻게 둘 다 어울릴 수 있는 것인가!

 

달팽이주파수의 풍자와 코미디는 <고시원>에서도 여전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를 깎아내리기보다는 위로하는 듯하다. 이전에 선보았던 탄탄한 드라마는 도연의 소주 한 병과 함께 더욱 진하고 뭉클해졌다. 커튼콜 시간이 되고 배우들이 인사할 때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크게 박수를 쳤다. 관객 한 명이 감동했다는 것을 배우들이 알아주기 바랐다.

 

커튼콜. 열렬히 박수를!

<고시원>의 표 값은 기본 4만 원이었지만, 학생 할인으로 2만 4천 원에 표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인 없이 4만 원을 내고 보았어도 아깝지 않았을 연극이었다. 커튼콜이 끝나고 박수를 멈추기가 아쉬울 정도로 멋진 공연이었으니까.

 

멋진 공연을 보여주신 달팽이주파수 일동에게 감사드립니다.

 

by 스폿라잇 에디터 진원준

 


| 2022. 6. 23 - 7. 10
| 극단 달팽이주파수
| 원작 윤기훈
| 연우 소극장 (서울 종로구 창경궁로35길 21)
| 전석 20,000원 ~ 40,000원
| 예매 링크 - (스폿라잇 홈페이지)
@dalpaengijupasoo_official
| 95분
| 010-7155-3102

시놉시스
서울의 한 고시원,
고시 공부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 한 데 모여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오늘이 어제와 같고, 어제가 그제이며, 내일 또한 오늘 하루와 같을 것이다.
매일이 별반 차이가 없는 하루.
그저 살아있기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가는 사람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어느 날, 고시원에 새로운 입주자가 찾아온다.
미국에서 왔다는 조지아나.
그녀가 고시원에 오고 지금까지 한 번도 없었던 새로운 사건이 발생한다.

인생의 가장 밑 바닥에서 절망을 안고 고시원으로 찾아온 사람들,
어떻게든 희망을 잃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그들은 세상이 말하는 정상적인 궤도를 향해서
다시 흘러갈 수 있는 걸까?

 

728x90
반응형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극 <짬뽕>  (0) 2022.07.05
연극 <화이트 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0) 2022.07.05
연극 <벨기에 물고기>  (0) 2022.02.21
연극 <뻥이오 뻥>  (0) 2022.02.16
연극 <신신방>  (0) 2022.02.12